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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이른 은퇴, 몸이 프로선수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는 조재진 총감독(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2011년 3월 18일 29살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전북 현대에서 2008시즌을 치른 뒤 J리그 감바 오사카로 이적했습니다. 감바가 전북에 큰 이적료(15억 원)를 제시했어요.



베이징 궈안(중국)과의 경기에서 세운 수원의 역대 ACL 안방 최다 관중 기록(1만4380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한편, 지난달 31일 아랍에미리트(UAE)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한 수원 선수단은 전남 순천에서 19일 고베전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임생 감독은 취재진과 연락을 하지 않은 채 이니에스타를 필두로 한 고베의 공격을 막기 위한 구상에 전념하고 있다. [이근승의 킥앤러시] 조재진 “뉴캐슬 입단





해도 아니었습니다. ‘선수는 쉬는 날 확실히 쉬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할 때예요. 잘못된 생각이죠. 과거 축구계는 ‘선수는 축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프로 스포츠는 팬이 있어 존재해요. 구단의 수익을 책임지는 것 역시 팬입니다. 선수의 연봉도 팬이 주는 거나 다름없죠. 프로 선수가





거예요. 매우 힘들었습니다. ‘이대로 하다간 부상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떻게 했습니까. 감독, 코치와 계속해서 얘기했어요. 의견 차가 커서 다툰 적도 있지만, 코칭스태프가 나를 배려해줬습니다. 팀 훈련이 큰 부담으로 다가오면, 개별 훈련을 할 수 있게 해 줬어요. 코칭스태프가 조재진을 배려한 건 철저한 자기 관리와 실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5배가 넘는 연봉도 제안했죠. 하지만, 2년 동안 제대로 뛰질 못 했습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그라운드를 뛸 수가 없었어요. 결국 은퇴를 결심했죠. 젊은 나이에 은퇴했습니다. ‘더 뛰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까. 감바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았습니다. 어떻게든 뛰려고 했어요. 하지만, 더 이상 선수로 뛸 수가 없었습니다. 몸이 운동선수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20대 초부터 ‘안 좋았다’던 고관절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20대 초부터 부상을 안고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는 건 유소년



단축시킨다고요. 무턱대고 뛰는 훈련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휴가를 마치고 팀에 복귀했을 때 테스트를 봅니다. 12분 안에 3,200m를 통과해야 하죠. 이런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곤 공과 함께하는 훈련 프로그램이 좋습니다. 우린 축구 선수지 육상 선수가 아니에요. 공을 가지고서도 체력을 키울 수 있죠. 예를 들어줄 수 있습니까. 경기장에서 공을 가지고 움직이는 거예요. 공을





나갔을때 멘탈 깨졌을것이다. 자기가 옆에서 봐도 그래 보였음. 그때 품은 독기를 반다이크한테 풀었을것. 백승호 아직 덜 완성된 선수지만 그 나이때 나보다 잘한다. 나는 그나이때 선배들 눈치 보느라 볼받자마자 선배들 주기 바빴는데 백승호는 유럽에서 축구를 배워서 그런지 그런게 전혀 없다. 홍철 높게 뻥 띄우는 크로스를 하는데 벤투가 김신욱 맞춤 크로스로 따로 훈련시켰다. 김영권은 영리하고 지저분하게



아쉬웠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어요. 많이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이후 전북 현대로 향했습니다. J리그 여러 구단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개인적으론 시미즈로 돌아가고 싶었죠. 하지만, 팀이 재정난으로 큰돈을 쓸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최강희 감독께 전화를 받았죠. ‘K리그에서 뛸 마음이 있느냐’고 물어보셨어요. 감독님이 신뢰를 보내주신 덕분에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없었어요. 축구공이 최고의 친구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죠(웃음). 아버지께서 ‘친구들하고 뛰어놀아’라고 하시면서 축구공을 선물해 주신 게 축구와의 첫 만남입니다. 친구들과 즐길 거리가 마땅치 않은 환경이 조재진을 축구의 길로 인도한 거군요. 친구들하고 모여서 할 수 있는 게 공놀이밖에 없었습니다. 운동장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는 게 일상이었죠. 공 하나로 친구들과 하나 돼 시간을 보낸다는 게 좋았습니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죠. 그렇게 축구에 푹 빠져든 것 같아요. 뛰어놀다가 축구 선수의 길을 걷게 된 겁니까. 내가 아버지 피를 제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축구를 아주 좋아하세요.



들어서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프랑스전에서 에릭 아비달(사진 왼쪽)과 볼 경합 중인 조재진(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작은 황새(리틀 황선홍)’란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조재진은 한국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선수였습니다. 인생의 동반자인 축구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경기도 파주가 고향입니다. 집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오락실을 빼면 친구들과 재미난 시간을 보낼 공간이